[오] <기명도> 여덟 퍽 중 한
폭
“회화는 정통과 비정통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전자는 예술가로서의 화가의 작품을 말하고 후자는 그림
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한 무명 화가들이 그린 그림을 말하는 것이다. 전자는 감상을 위해 그린 것이며 후자는 실용성이 수반되는 그림이다. 전자는
같은 그림을 한 장 이상 그리지 않지만 후자는 똑같은 것을 몇 장이나 반복해서 그렸다. 전자는 창조를 본질로 하고 후자는 서민들의 일상적인 생활
양식이나 관습 등과 연관이 있는 것이 많다.”
일본의 민예관을 창설한 야나기 무네요시의 말이다. 짐작하듯이 후자가 민화에 대한
설명이다. 서민들의 진솔한 삶에서 우러나온 민화에는 신화, 종교, 정신이 깃들어 있다. 호랑이 ‘호虎’자를 1만 번 반복해서 써서 그것이 다시
커다란 ‘호’자를 이루는 <만호도>는 부적의 기능을 지니고 있다. 똑같은 행위를 반복함으로써 심리적 만족감이나 성취감을 얻는 일종의
주술적 행위인 것이다.
민화의 가장 대표적인 그림인 <까치 호랑이> 또한 마찬가지. 몸집은 고양이 같고 얼굴은
우스꽝스럽고 익살이 넘치는 표정을 짓고 있는 화면 속 호랑이는 해악을 끼치는 맹수가 아니라 나쁜 귀신을 막아주고 착한 사람을 도와주는 영물靈物로
여겼다. 그래서 호랑이 그림을 대문에 걸어두기도 하고 사당에 산신도와 함께 놓아두기도 했다고 한다.
이뿐만 아니라 민화 속에
등장하는 다양한 소재들은 각기 다른 염원과 상징을 담고 있다. 민화 중 꽃, 나무, 풀, 새, 짐승 등을 함께 묘사한 화조도가 가장 많은 것은
자연을 가까이 두고자 하는 사람들의 심리가 반영된 결과이다. 대부분의 화조도에는 꽃나무 사이로 쌍쌍이 짝지은 새들이 정겹게 날아다니는 모습이
그려져 있는데, 이는 부부간의 금슬과 연인간의 애정을 상징하는 것이다.
탐스런 꽃송이와 널찍한 잎사귀를 함께 그린 목단도는 부귀
안락과 남녀 화합을 상징하는 것으로 여겨 혼례용 병풍에 많이 그렸다. 이처럼 민화는 병풍 그림으로도 많이 활용되었다. 그것을 둘러칠 장소나
행사의 내용에 맞는 이미지가 그려졌는데, 사랑방에는 <책걸이>나 <문자도>, 안방에는 <화훼도>나
<화조도>, 신방에는 다산을 의미하는 <어해도>나 탐스러운 복숭아가 열린 <화조도>병풍을 두었다. 수연이나
회혼례 때에는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십장생 그림을 썼다. 이 외에도 민화를 그린 헝겊을 신부가 타는 꽃가마 덮개로 사용하고 몸채에도 원앙이나 학을
조각하는 등 도자기, 가구,
문방구, 돗자리에 이르기까지 민화는 일상 생활 곳곳을 장식하였다.
[왼] <화조도> 열 폭 중한 폭
[오]
<목단도> 여덟 퍽 중 한 폭
민화는 눈에 보이는 모습, 사물과 사물의 관계 뿐만
아니라 현실에 없는 것이라도 상상을 해서 표현한 것이다. 여기에는 기법상의 특징이 두드러지는데, 전후·좌우·상하·고저에 대한 분명하고 일관된
시점이나 작법을 무시하고 그렸다. 예컨대 호랑이의 앞 얼굴과 옆 얼굴을 동시에 그리기도 하고 책거리 그림에서 사물의 겉과 속, 혹은 좌측과
우측을 동시에 표현하는 것이다. 또한 민화는 강렬하고 화려한 색채를 썼다. 사물이 화면 속에서 서로 조화를 이루도록 한쪽이 크면 다른 한쪽은
작게, 한쪽의 색상이 강렬하면 다른 쪽은 연하게 그리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사물을 하나의 완전한 존재로 그리기 때문에 형태뿐 아니라 색채에서도
채도와 명도가 높은 색을 모두 사용했던 것이다.
사람들은 민화를 왜 좋아할까? 원근법, 색채, 구도 등의 불합리성이 바로 시공과
현실을 초월한 민화의 멋이고 아름다움일지 모른다. 세련되게 꾸미거나 다듬지 않고 내키는대로 거침없이 솔직하게 표현한 그림이어서 싫증이 나지 않는
것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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