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이야기

스타일은 왜 만들어지는가?

draw-hee 2005. 10. 22. 08:28

 이제 겨우 첫돌이 지나 걸음도 제대로 못 걷는 아기가 제법 사람들을 구별할 줄 아는 모습을 보면 신기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주 기초적인 의사소통 밖에 못하는 무기력한 아기가 세상과 관계를 맺어가고 있다는 증거니까요. 아기가 사람을 구분하는 기준만큼 단순 명쾌한 것은 없을 것입니다. ‘나를 보호하고 도와줄 만한 사람인가 그렇지 않은 사람인가?’가 그것입니다.

 익숙한 사람은 대체로 도움이 기대되는 사람이라고 판단해 안심하고 낯선 사람은 어떨지 몰라 경계합니다. 성장하면서 인간은 만나는 사람뿐만 아니라 주변의 모든 정보를 분류하고 비슷한 것들끼리 묶어내는 일을 매일 무의식적으로 반복합니다. 이런 무의식적 행동은 과거 우리의 원시 선조들이 맹수와 사냥감을, 그리고 독초와 약초를 구분하던 일상이 이어져 온 것입니다. 그 차이를 아는 것은 생존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능력이었습니다. 그 능력은 기술적으로 차이가 날 뿐 본질적으로는 아기가 하는 것과 목적이 같습니다. 따라서 정보 분류와 범주화는 생존을 위한 인간의 본능인 것입니다.

 그리고 인류가 문명화되면서 이러한 본능은 거대한 학문을 낳았습니다. ‘분류학의 아버지’라 하는 린네는 분류법의 체계를 만들어냈고, 이후 과학자들은 지구에 사는 수많은 동식물을 정교하게 분류해왔습니다. 최근의 흥미로운 성과로는 브라이언 사이키스(Bryan Sykes)라는 옥스퍼드대학 인류유전학 교수가 만들고 있는 인류의 DNA 가계도입니다. 그는 미토콘드리아 DNA가 남성의 것은 버려지고 오직 여성의 것만 다음 세대로 유전된다는 사실에 근거해, 같은 모계에서 나온 사람들을 구별할 수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마치 오늘날 성(姓)으로 부계 조상이 같은 사람들을 구별할 수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미토콘드리아 DNA는 문자 기록이 아닌 우리 몸속에 새겨진 정보이므로 성으로 부계 조상을 찾는 것보다 훨씬 정확하게 모계 조상을 찾아준다고 합니다. 그는 수많은 미토콘드리아 DNA를 분석하여 인류의 DNA 가계도를 만든 것입니다. 사이키스 교수는 누구든지 자신의 연구실에 DNA 샘플을 제공하면 그가 어떤 모계 조상으로부터 흘러나왔는지 알려주고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DNA 샘플을 제공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렇듯 사람은 다른 사람을 분류함과 동시에 자신이 어디에서 왔고, 어떤 종류의 사람인가에 대해서도 본능적 호기심을 갖습니다. 그래서 혈액형에 따라 A형은 어떻고 B형은 어떻다는 식의 분류가 사람들 사이에서 아주 흥미로운 이야깃거리가 됩니다.

 그 밖에도 분류 방식은 아주 다양합니다. 생년월일, 별자리, 외모, 목소리는 물론, 집안에서 몇 째로 태어났느냐는 것도 중요한 분류 기준이 됩니다. 심지어 주먹을 어떻게 쥐고, 커피 잔을 어떻게 잡느냐는 등의 특정 상황에서 취하는 행동에 따라서도 그 사람의 성격을 규정하고 미래의 운명을 예측하기도 합니다.

 이제 정보 분류와 범주화의 본능은 생존력을 높이는 역할을 넘어 학문을 체계화하고 나아가 커다란 문화적 현상이 되어 흥밋거리와 상품을 창조하기에 이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미디어가 가장 다루기 좋아하고 기업인과 디자이너들에게도 중요한 정보가 되는 사람 분류 방식은 무엇일까요? 바로 라이프스타일에 따른 분류입니다. 정보가 넘쳐나고 상품과 서비스가 다양해지면서 삶의 방식도 갖가지로 다변화되었습니다.

 수년 전부터 미디어는 여피, 보보스, 노노스, 싱글족, 투잡스족 등 도시인의 각종 라이프스타일 유형을 분석, 보도해왔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이런 유형의 본질은 물론 삶의 태도와 행위지만, 결국 그 특징은 그의 겉모습과 그가 속한 공간의 스타일로 표현됩니다. 그리고 스타일은 소비라는 과정을 통해 실현됩니다.

 다시 말해 어떤 족속이든 그는 특정한 유형의 소비를 함으로써 자신의 고유한 기질과 성향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성애자와 동성애자의 스타일이 확연히 다르듯 보보스와 환경주의자, 귀차니스트가 추구하는 스타일도 각기 다릅니다. 그런 뜻에서 “이제 살아가면서 무엇을 이루어내는가보다 무엇을 소비하는가가 더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고 말한 마르셀 뒤샹의 지적은 대단히 통찰력 있습니다.

 인류에게 정보를 분류하고 범주화하는 본능, 그리고 남들과 달라지려고 애쓰고 자신의 영역을 표시하려는 본능이 사라지지 않는 한 라이프스타일에 따라 사람을 분류하는 행위는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스타일을 만들어내는 디자이너의 창의력도 영원히 필요할 것입니다.